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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어디까지 가봤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도서관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개인 서재, 장서 규모가 규모인지라 서재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장서수가 23만에서 25만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름 : 칼 라거펠트 (Karl Lagerfeld)
출생 : 1939년 9월 10일
국적 : 프랑스
직업 : 패션디자이너
데뷔 : 1995년 '피에르 발만'
경력 : 펜디, 샤넬, 발렌티노, 찰스 쥬르당
수상경력 : 1955년 IWS 수상
1980년 니만마커스상
1982년 미국디자인협회상
홈페이지 : http://www.karllagerfeld.com/


# 칼 라거펠트 스토리.

1952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칼 라거펠트는 가족과 함께 파리로 왔다.
16세에 IWS(국제양모사무국) 주체의 디자인 콘테스트 코트 부문 제1위를 차지하며 데뷔하여 이 계기로 발맹 Pierre Balmain, 파뜨Jacque Path 등의 오뜨꾸뛰르에서 일하게 되었다.

1964년, 당시 유행처럼 번져 오르던 프레타포르테계에 진출하게 되어 1970년, 프레타포르테계의 파이어니어라고 할 수 있는 클로에 Chloe 사와 계약하고 책임 디자이너로 결정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클로에 사의 디자인은 부인복 이외에도 모피, 구두, 속옷, 스포츠웨어, 수영복, 니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 클로에 사와 칼은 절친한 관계로 오늘날까지 그 계약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칼 라거펠트는 다카다 겐조 Dakada Kenzo와 함께 “두 사람의 K라고 불리며, 파리 프레타포르테 모드계에서 톱 디 자이너로 뽑힌다.

그는 패션에 었어서 리드미컬한 율동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가장 중요시하며, 소프트하게 처리된 소매를 솔기가 없이 부착하 거나, 가볍고 견고한 헴라인, 산뜻한 레이어드 등 그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봉제기술에 있다.
현대적인 감각의 페미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흐르는 듯한 율동을 표현한 아름다움이 매력이며, 평범하면서 일상적인 코디에서 벗어나 위트있게 새로운 코디법을 제시하고 있다.

스타일의 혼합과 엄격한 피리지엔느의 쉬크 chic함, 그리고 그의 컬렉션은 균형잡히고 조화롭고 우아하며 프렌치 감각으로 세련되어 있다.
“토털 룩(TOTAL LOOK)”에 자신을 보여 엘레강스하고 스포티한 팬츠 룩, 여유 있게 감싸는 랩 코트, 롱 카디간, 홀터 넥의 이브닝 드레스 등으로 사랑받고 있다. 

1975년, 라거펠트 향수 회사 설립.
 
1975년 4월, G.M.C(Group Mode Creation) -
크리스티앙 디오르 부티크, 에마누엘 웅가로, 파랄렐, 생 로랑 리브 고슈, 클로에, 다카다 겐조, 소지아 리키엘의 프레타 포르테 메이커의 6회사에 의해 결정된 그룹 결성 때 부회장에 선출되어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프레타포르테 창설 멤버로서 클로에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그는 1982년 샤넬 Chanel로 자리를 옮겨,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샤넬이 보여준 뛰어난 감각을 살리면서 진부한 측면은 가차 없이 버렸다고 호평을 받았다.
1 세기를 지켜온 샤넬 라인에 그의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디자인 감각을 믹스시켜 샤넬의 정신을 살려나가 많은 칭찬을 듣게 되었다.

1985년, 미국시장을 겨냥한 스포츠웨어 콜렉션을 발표하면서 마리오 발렌티노와 찰스 쥬르당에 장갑과 구두 디자인을 제공하고 그리고, 클로에 Chloe와 펜디 Fendi의 디자인도 맡아하고 있다.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이지적이고 섹시한 멋'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는 많은 labels의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창작활동의 과정 은 나를 위한 자아 여행이 아니다.
나는 자신을 위한 명성을 만드는 일에 흥미가 없다.”고 말하며, 또 “자기 고집을 꺾을 줄 알 아야 진정한 디자이너다.” , “유행이란 늘 움직이는 것이며, 의상이라는 것은 유행이라는 연속적인 운동의 한 부분일 뿐, 이미 이뤄진 일보다 다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편이 낫다” 고 말한다.

기존의 정돈된 클래식 스타일에서 약간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느낌 강조한 전위적인 클래시즘의 진수를 보여 준다.
현재, Lagerfeld for men, Chloe, KL-Femme, KL- Homme등 4개의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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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라거펠트 컬렉션. 

1997년 봄/여름 샤넬 오뜨꾸뛰르 컬렉션

칼 라거펠트는 관능미를 강조하는 로맨티시즘과 단순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절묘한 조화의 미로 보여준다.
심플한 라인의 의상에는 가브리엘샤넬의 전통을 이어 진짜 보석 악세사리만을 사용해 여성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화려함을 선보인다.
다양한 머리장식에서는 상식과 패러독스의 혼합을 그대로 지키면서 발랄함과 유머를 가미하는 그만의 패션철학을 엿볼 수 있다.
깊게 파인 네크라인으로 섹시함을 강조하고 굵기를 달리한 어깨끈은 여성의 곡선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오뜨꾸뛰르의 세계를 연출한다.
 
1997년 가을/겨울 칼 라거펠트 컬렉션

1997년 가을/겨울 넓은 무대에는 얇고 투명한 비닐을 폭포수처럼 길게 늘어뜨려 샤프한 신비스러움을 연출한다.
눈 주변을 깊고 푸르게 강조해 립스틱의 컬러를 더욱 선명하고 밝아 보이게한 메이컵이 여성미를 돋보이게한다.
모델들의 힘있는 몸짓과 걸음걸이는 강한 남성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피날레의 얇고 부드러운 드레스는 스커트라인과 어깨라인에 변화를 줘 고전전인 이미지와 우아한 아름다움을 함께 선보인다.
 
1997/1998 가을/겨울 컬렉션
 
1997/1998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발렌티노는 술 장식과 나풀거리는 깃털로 무도회장의 귀부인과 같은 도도함을 선보인다.
모피와 벨벳을 사용해 거칠고 강인함을 함께한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스모크 그레이, 체리핑크, 보라,블루, 그린과 같이 발렌티노는 화려한 컬러를 사용해 색채의 다채로움을 과시한다.
화려한 드레스부터 셔츠, 재킷에 이르기까지 길게 파인 브이넥과 드러난 목선으로 강한 이미지와 모던미를 연출한다.
자수로 장식된 부츠와 실크, 시폰을 소재로 한 의상으로 세련된 멋을 자아내고 손안에 쥘 수 있을 만큼 작고 화려한 백으로 의상과 완벽한 조화를 추구한다.
꽃무늬 의상과 정열적인 붉은 색 드레스에 꽂힌 깃털장식 코르사주는 퇴폐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한 기품을 동시에 느끼게한다.
 
클로에 컬렉션
 
칼 라거펠트는 프레타포르테컬렉션에서 또 다른 프랑스 브랜드클로에를 선보인다.
클로에는 여성스러운 색깔의 의미를 갖는다.
칼 라거펠트는 1997년 가을/겨울 클로에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팝싱어 폴 메카트니의딸 스텔라 메카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1997년 봄/여름 클로에 컬렉션

칼 라거펠트는 꽃으로 장식한 무대 위에서 밝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대중적이고 낭만적인 옷을 선보인다.
가볍고 얇은 소재를 주로 사용해 시원함과 경쾌함을 강조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비치웨어와 비치는 소재의 의상은 발랄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를 풍긴다.
 
1997 가을/겨울 클로에 컬렉션

1997년 가을/겨울 클로에는 지구, 달,행성과 함께 여행하는 사이버공간의 유희가 테마이다. 다양한 색상으로 물들이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린 헤어스타일은 거친 느낌과 열정적인 모습으로 진한 화장과 함께 섹시함과 자유로움을강조한다.
 
모피의 명문 <펜디>

칼 라거펠트가 이탈리아 밀라노컬렉션에서 펼치는 패션세계는모피의 명문 펜디이다.
펜디는 1925년 로마의 작은 가죽모피 가게에서 아델레 펜디에의해 시작된다.
펜디는 아델레의 다섯자매의성장과정과 비례하여 그 규모가 커진다.
지금의 펜디는 다섯자매가 공동 경영하는 패밀리 패션하우스이다.
로마근교에 위치한 펜디그룹은 명품전시관과 모피아뜰리에로 이루어진다.
명품전시관에 자리한 펜디의 주 고객인 헐리우드스타의 자료들이 눈길을끈다.
보로냐거리의 로마매장은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다.
1층의 공간은 칼라거펠트의 디자인이 담긴 펜디의 컬렉션작품들을 전시하고있다.
2층의 모피공간은 부나 권력의 상징에서 벗어나 여성의 사랑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팬디그룹의 모피철학을보여준다.
 
2002 가을/겨울 펜디 컬렉션

칼 라거펠트는 펜디의 2002 가을 겨울을 화이트 컬러로 시작한다.
미니멀리즘이 가미된 심플한 의상에서 부츠, 장갑, 백에 이르기까지 깔끔한 화이트 톤으로 깨끗하면서도 맑게 선보인다.
펜디의 상징인 모피의상들은 캐주얼 스타일에 고전적인 분위기를 강조해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한다.
칼라거펠트의 블랙톤은 고급스러움을 선물한다.
허리선을 강조하는 굵직한 메탈벨트나 큰 브로우치를 기능성 소품이 아닌 옷 전체의 분위기를 강조하는 포인트로 제시한다.
모피와 함께 선보인 다양한 가죽의상은 블랙톤이 주는 럭셔리이미지로 캣워크를 수놓는다.
칼라거펠트의 베이지와 금속빛은 미래를 그려낸다.
칼라거펠트는 모피와 가죽의 조화로 절제된 럭셔리 펜디룩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2003 봄/여름 프레타포르테 라거펠트 갤러리 컬렉션

모노톤의 의상들이 컬렉션을 지배한 가운데 칼 라거펠트는 그의 연출 포인트를 대비적 발상에 두고 소재와 디테일의 개성넘치는 매치를 시도했다.
데님과 쉬폰의 만남에서는 데님팬츠에 워싱처리를 통해 컬러톤의 절묘한 조화를 꾀했고, 블랙 원피스에 포인트로 활용된 셔츠 칼라형의 스카프는 그 구조적 발상이 독특했다. 화이트 린넨 탑과 회아트 데님 핫팬츠의 매치는 날카롭게 정리된 탑의 핀턱과 팬츠의 거친 컷팅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블랙,화이트가 주류를 이룬 가운데 스카이 블루, 핑크등의 컬러로 변화를 주었고, 소재로는 쉬폰, 데님, 가죽, 린넨, 면직 등이 활용되었다.
핀턱, 플리츠, 셔링, 러플등을 이용해 변화를 주었고, 비즈, 메탈릭 장식을 통해 적절한 포인트를 가미했으며, 데님의 워싱처리는 도시적인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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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칼 라거펠트.
 
샤넬'등 3개브랜드 거느린 유행의 제왕. 소장도서 25만권.
 
세계 패션은 창의력 번뜩이는 천재들이 이끌어간다.
끊임 없이 새로움을 제시해야 하는 세계.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카이저 칼, 킹 칼, 제왕…. 사람들은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그렇게 부른다.
디자이너 세계에서 라거펠트만큼 다재다능하고 정력 적이며 자기관리에 철저한 인물도 드물다.
 
그는 몬테카를로 로마 브리타니 함부르크 베를린 파리,6곳에 저택을 두고있다.
그 집 6채에 소장한 책만도 25만권. 화려한 쇼와 모델과 파 티 대신, 그는 책에 파묻혀 지낸다.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예술 관련잡지나 전기, 역사책들을 읽으며 디자인을 구상한다.
신문 잡지에 서평을 즐겨 기고하고, [샤넬] 홍보에 필요한 글과 사진도 직접 쓰고 만든다.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에도 두루 능통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톱 디자이너라면 자유분방할 법하지만 라거 펠트는 마치 성직자처럼 단정하기만 하다.
차림도 늘 검정 슈트에 흰 셔츠, 짙은 선글라스와 꽁지머리다.
수수께끼에 싸인듯, 조금은 그로테 스크해 보이는 이미지를 그는 즐긴다.
 
그 자신은 한결같은 데 비해 그의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70년대 중반 [클로에] 디자이너 시절, 포스트 모더니즘을 도입해 하이패션과 스트리 트패션을 혼합시킨 시도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련되면서도 캐주얼한 옷을 원하던 당시 분위기를 그는 정확히 파악했던 셈이다.
그는 의상이 정말 패셔너블해지려면 액세서리나 메이크업, 모델, 음악, 이미지와 환상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슈퍼모델 시스템을 앞장서 도입했다.
 
그는 {패션은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면서도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옷은 순간을 반영해야한다.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소용이없다.}
브랜드 하나를 맡아 디자인을 책임지기도 벅찬 마당에 그는 3개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세계적 여성복 브랜드 [샤넬](83년∼),
주로 모피제품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팬디](65년∼),
그리고 자 기이름을 내건 [칼 라거펠트](84∼)다.
 
25년 넘게 디자인해온 프랑스 브랜드 [클로에]는 전 비틀즈 멤버인 가수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에게 넘겨줬다.
구두,모 자같은 액세서리 디자인은 물론 화장품회사 [엘리자베스 아덴]의 향수 개발담당이기도 하다.
 
38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사업가인 스웨덴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거펠트는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웠다.

13살때 어머니가 데리고 간 함부르크 예술학교장이 {당신 아이는 옷에만 관심이 있다}고 하자, 그는 초상화가가 되려는 꿈을 깨끗이 접고 이듬해 파리로 떠났다.
16살때 국제양모사무국 경연대회 외투디자인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55∼58년 디자이너 피에르 발망에게서, 58∼63년 장 파토에게서 도제수업을 받았다.
 
그는 84년 신화적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후계자로 지목받 으면서 정상에 섰다.
그는 전통과 혁신을 중재하는 균형감각을 [샤넬] 에서 십분 발휘하고 있다.

[샤넬]의 핵심요소들, 즉 견고한 천, 독특한 트위스트, 상식과 패러독스의 혼합을 그대로 지키면서 발랄함과 유머를 가미하는 수완이 빛난다.
 
일부에서는 라거펠트가 {가죽부츠를 신고 들어와 샤넬의 정신을 망 치고 있다}고 혹평한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고객 연령대가 50대 중반에서 20대로까지 젊어지고 매출도 연5억달러로 불었다.
 
"과거 를 회상하고 존경한다면 창작은 불가능하다.",
예순이 넘어서도 라 거펠트는 그런 이유로 회고록은 쓸 생각조차 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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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거펠트에 관한 사실 10가지.
 
1. 그는 4살이던 때 생일선물로 '시종'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오후 낮잠을 자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얘기할 수 있기 때문.
 
2. 그의 어머니는 독일인이고 아버지는 스웨덴에서 캔 우유 사업을 하는 백만장자였다.
 
3. 그는 독일 함부르크 외곽에 있는 성에서 자랐다.
거기에서 집 안 곳곳의 가구를 뒤지며 그의 방을 색칠하고 또 아버지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4. 그는 8살에 벌써 영어와 불어를 마스터했다.
현재 그는 6개 국어를 한다.
 
5. 그는 교회에서 일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추기경이 입은 옷이 너무나도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가 17살이 되던 해 파리에 있는 발맹 하우스에서 그는 진짜 일을 시작했다.
 
6. 프로급의 탱고 실력을 갖추었는데, 실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춤은 차차차이다.
 
7. 그가 부채를 항상 갖고 다니는 까닭은, 사람들의 추측처럼 뚱뚱했던 자신의 배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현재는 84파운드를 감량해 17살 때 몸무게가 되었다) 끔찍한 담배연기를 피하고 또 다른 사람의 입냄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8. 그는 일평생 술, 담배, 마약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마시는 음료는 다이어트 코크와 에스프레소이고 물은 알약 먹을 때나 마신다.
 
9. 그는 파리, 로마, 몬테카를로, 비아리츠에 집을 갖고 있고 그의 집 지하에 있는 도서관에는 25만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
 
10. 150벌의 디올 옴므 수트 이외에도 Knuckle-duster(격투할 때 손가락 관절에 끼우는 쇳조각)에 심취해 있어 손가락 한 개에 최소 한 개씩을 끼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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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패션에 관한 모든것  |  글쓴이 : Mademoiselle 원글보기